이번 글에서는 사회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귀스트 콩트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견하기 위해 관찰하고, 예방하기 위해 예견한다.
오귀스트 콩트는 1798년 2월 19일 프랑스의 몽펠리에 에서 태어나 1857년 9월 5일에 사망한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이다.
몽펠리에는 프랑스 남부의 거대한 도시로, 프랑스 전체를 기준으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다. 오귀스트 콩트가 태어난 1700년도 후반에는 프랑스혁명의 막바지로 몽펠리에가 급속도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프랑스혁명으로 인하여 이 시기에는 절대 왕권 제도와 절대 완권제의 지지자였던 귀족들 거의 대부분도 재정적 곤란에 처해있어 농민을 착취하여, 농촌을 거의 황폐화시켰다. 그렇기에 사회적 대변혁이 불가피했고, 수많은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퍼지는 시기였다.
콩트는 이런시기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안정을 이루고 개선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당시 아이작 뉴턴에 의해 일어난 과학 혁명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뉴턴과 마찬가지로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자연법칙에 종속된 하나의 과학으로 보고자 했다. 그는 관찰에 기초하여 사회를 연구하고, 그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을 사회학적 이론의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그가 집필한 실증 철학가의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실증철학가의에서 자연현상에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처럼 사회에도 그런 법칙이 있다. 라며 사회 물리학을 저술하였고, 사회는 어느 한 부분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말하였다.
하나 그의 노력은 그다지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의도한 모든 과학의 통합은 지나치게 큰 야망으로 생각되었고 따라서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결국 학계에서 고립된 콩트는 자신의 후기 저작인 실증 정치체계에서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색채의 주장을 하며, 자신의 학문 내에서도 모순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였다. 결국 종래에 이르러서는 인류교라는 종교를 창시하여 사제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하나 그의 이러한 모순적 행보들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학을 창시하고 후대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현재 쉴 새 없이 발전하며 변해가는 4차 산업 혁명의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콩트의 실증 철학은 되새겨 보아야만 하는 학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방하기 위하여 예견하고 예견하기 위해 관찰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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